• 최종편집 2020-04-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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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역사, 그리고 커피➁] 커피의 과거와 미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커피를 좋아하는 일에도 이 이야기는 통용된다. 어떤 이의 눈에는 그저 검은 물 한잔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운명의 전환점이 되었을 역사 속 커피.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에 뿌리내리고, 시대와 함께 변해온 한 잔의 커피 이야기.   참고도서 <실용커피서적> 따비 / <커피인문학> 인물과 사상사 사진 동서식품 / 달콤커피 / (사)한국커피바리스타협회 / 한국네슬레 1978년 최초 동결건조 공법 만든 동서식품 맥심 ⓒCOFFEE BARISTA   달콤한 믹스커피의 맛, 한국을 사로잡다   유입 초기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커피는, 다방 문화의 확산과 함께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6.25 전쟁의 포화와 함께 다방 문화가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인스턴트커피의 활성화다. 해방과 동시에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군용 식량에 포함되어 있던 인스턴트커피가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했던 것. 당시 커피는 대부분이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유통되었지만,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서 알음알음 판매되었다.   인스턴트커피의 합법적인 유통 질서를 확립하고 외화 낭비를 막기 위해 우리나라는 자체 커피 생산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가장 먼저 동서식품이 1970년 미국 제너럴 푸즈와 기술 제휴를 통해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커피 ‘맥스웰 하우스’를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맥스웰 하우스는 1970년대 초 국내 커피시장 대부분을 점유하면서 꽤 오랜 기간 호황을 누렸다.   동서식품은 1974년 식물성 커피 크리머인 프리마를 자체 생산하였고,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커피자판기가 등장했고, 이맘때쯤 인스턴트커피 시장에 뛰어든 두산그룹과 합작한 네슬레의 등장으로 드디어 국내 커피시장은 맥심과 초이스 커피로 크게 양분되었다.   1990년대부터 핸드드립 커피를 선보인, 국내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선생. ⓒCOFFEE BARISTA   ‘핸드드립’의 시대가 열리다   프리미엄 커피 같은 마케팅 용어와는 다른 의미의 ‘스페셜티 커피’는 쉽게 말해 스페셜티커피협회에서 정한 기준 평가에서 100점 중 80점 이상을 받은 우수한 등급의 커피를 말한다. 국내 스페셜티 커피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커피애호가들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1서3박’이라 불리는 국내 1세대 바리스타들로, 1980년대 국내 최초로 스페셜티 커피를 이용한 핸드드립 커피를 선보였다.   1990년대 중반 명동에서 융드립으로 유명했던 (故)서정달 선생, 동경에서 배운 드립 커피를 소개한 (故)박원준 선생, 오사카 출신으로 절대미각이라 불렸던 박상홍 선생, 현재 현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보헤미안 커피 박이추 선생이다.   박이추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로 단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커피전문가 과정을 개설하였으며, 카페 보헤미안을 강릉으로 옮기면서 강릉이 커피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는 데 한 몫을 담당했다. 또 현재 강릉 보헤미안 커피공장을 성황리에 운영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국내 최초 원두커피 전문점 ‘자뎅’이 압구정동에 처음 가게를 열면서 에스프레소 커피의 대중화가 시작되었으며, 1999년 스타벅스가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1호점을 연 것을 시작으로 국내 커피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기 시작했다.   2018년 달콤커피가 처음 선보인 로봇카페 ‘비트’, 주문부터 결제까지 앱 하나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COFFEE BARISTA   로봇, 커피를 내리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인공지능과 로봇에 주목하면서, 사람의 손을 대체할 수 있는 무인 서비스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은 커피업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단순하게 음료를 따르기만 하는 수준의 로봇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문에서 서빙까지, 기존에 사람이 하던 일을 로봇이 대신하고 있는 가게가 꽤 많이 늘었다. 다양한 ICT 기술을 적용한 로봇 바리스타는 맛은 둘째 치고, 색다른 볼거리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처럼 무인화 바람이 거세지는 주요 이유는 무엇일까. 비대면 거래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느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또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직무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비용 절감에 고심하던 점주들이 결단을 내린 것이다.   2018년 초 달콤커피가 로봇카페 ‘비트’를 오픈해 고객들에게 로봇 바리스타의 손맛을 보여 주었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라운지엑스에서는 결제에서부터 핸드드립, 서빙까지 모두를 로봇의 손으로 서비스한다. 로봇 바리스타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드립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수정할 수 있으며, 동시 추출방식을 통해 기존 드리핑보다 최대 2.6배 빠르게 핸드드립 커피를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나 로봇카페는 좁은 공간에도 설치할 수 있고, 유지비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이익이 된다는 평가다. 남는 인건비를 매장 관리, 조리 등 다른 곳에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또 매출 관리 시스템을 통해 정확한 수입 집계 등이 가능하다.   로봇 카페가 늘어난다고 해서 사람의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다. 재료 채우기, 청소, 정리 등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다만 커피 제조에 묶여 있던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로봇이 제공하는 커피가 일반 자판기 커피와 다를 바 없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애착이나 정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이 유행을 막을 대안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한국능력교육개발원의 전석한 원장. ⓒCOFFEE BARISTA   ‘커피 바리스타’ 새로운 직업이 되다   커피바리스타 자격을 국내에 가장 먼저 등록 도입한 곳은 ‘(사)한국능력교육개발원(이하 한능원)’이다. 전석한 원장은 “자격법 관련해서 서류를 접수하러 갔는데, 담당 공무원이 ‘다방 커피도 자격이 필요해요?’라고 되물어올 정도였다”고 당시의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한능원은 2007년부터, 미등록 커피 자격증이 난무하던 당시 상황을 타개하고 커피바리스타 자격을 규정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진행해왔다. 자격 등록 서류를 갖추기 위해 매번 직접 발로 뛰어야 했고, 자료 부족으로 접수를 거절당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러나 자격 발급에 대한 국가 인증을 받고 나서도 막막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자격증 교육을 위한 교재, 학원 등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1999년 스타벅스가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1호점을 연 것을 시작으로 국내 에스프레소 시장에 대한 관심이 늘었으나, 외국 브랜드를 중심으로 형성된 커피 시장 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2007년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공전에 없던 히트를 치면서 바리스타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점차적으로 자격 지원자들의 수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기면서 점차 새로운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관련 자격을 발급하는 기관이 우후죽순으로 늘면서 자격증 남발로 인해 커피바리스타 자격이 하향평준화 되었다는 점이다. 커피바리스타 자격을 따서 취업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자격증 취득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커피 바리스타 자격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자격증을 따고, 취업으로 직결될 수 있어야 한다.   전석한 원장은 커피바리스타 권리와 자격 보호를 위해 기존 1, 2급 자격이외에 커피마스터 자격시험을 만들었으며, 현재는 커피마스터 자격의 국가공인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커피마스터 자격 합격률은 약 20%선, 자격을 보유한 사람은 300여 명으로 다른 민간 자격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숫자다. 자격시험이 어렵다보니 지원자가 적고, 이로 인한 수익도 적지만 바리스타들에게 꼭 필요한 자격이라는 것이 전 원장의 신념이다. 또 바리스타들의 권리와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사)한국능력교육개발원에서 발급하던 커피 관련 자격을 (사)한국커피바리스타협회(KcBA)에 일임해 운영하고 있다.  
    • 커피대백과
    2020-04-03
  • [한국의 역사, 그리고 커피①] 근대사에서 찾은 커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커피를 좋아하는 일에도 이 이야기는 통용된다.  어떤 이의 눈에는 그저 검은 물 한잔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운명의 전환점이 되었을 역사 속 커피.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에 뿌리내리고, 시대와 함께 변해온 한 잔의 커피 이야기.   참고도서<실용커피서적> 따비 / <커피인문학> 인물과 사상사 사진국가기록원 / 서울역사박물관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해외문화홍보원 / 인천 화도진도서관   1917년 연미복을 입은 고종황제의 모습 ⓒCOFFEE BARISTA   조선의 커피   국내 커피의 역사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단 자료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국내에 처음 커피가 들어왔는지 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첫 커피 애호가로 고종을 떠올리지만, 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엄밀히 말해 고종이 마신 커피는 우리나라의 첫 커피가 아니라는 것.   1896년 아관파천이라는 역사적 혼란 속에서 과연 그가 여유롭게 커피에 심취할 수 있었는지, 덕수궁 ‘정관헌’이 정말 고종이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던 곳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고종이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알려진 덕수궁 정관헌. ⓒCOFFEE BARISTA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보> 1884년 3월 27일자에는 “이탈리아 정부는 시험 삼아 차와 가배를 시칠리아 섬에 심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초대 주한 영국 영사를 지낸 윌리엄 칼스가 1884년 5월, 우리나라에 부임하면서 쓴 <조선 풍물지>에는 “한양에 부임하면서 숙박 시설이 없어 조선 세관의 책임자인 묄렌도르프의 집에서 묵었는데, 뜨거운 커피가 제공되어 고마웠다”고 쓰여 있다.   이외에도 아관파천보다 10년 앞선 1886년, 관료였던 윤치호가 중국 상하이에서 쓴 일기에는 “돌아오는 길에 가배관에 가서 두 잔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왔다”라고 적혀 있으며, 이후 1897년 독립신문 영문판에 ‘자바 커피’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커피가 등장한 시점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마셨던 때보다 훨씬 이를 것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앙투아네트 손탁(왼쪽에서 세 번째). ⓒCOFFEE BARISTA   카페라는 새로운 문물을 만나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카페는 1902년 고종의 후원으로 독일계 프랑스인 여성 앙투아네트 손탁이 서울 정동에 세운 손탁호텔의 1층에 위치한 정동구락부라고 알려져있다. 구락부는 공동의 관심사나 목표를 가지고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로 ‘클럽’의 일본식 음역어이다.   고종은 당시로서는 꽤 유난스러운 커피 마니아였음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1895년 발생한 을미사변으로 인해 1896년 2월부터 황태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게 되면서 고종은 러시아 공사 카를 베베르를 통해 처음으로 커피를 접하게 되었다. 이 시기, 고종의 커피 시중을 들었던 사람이 바로 손탁으로, 이 때의 인연에 힘입어 손탁 호텔까지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손탁호텔 1층에 위치했던 정동구락부. ⓒCOFFEE BARISTA   인천 제물포항이 개항되면서 인천은 외국인들이 자유로이 거주하면서 치외 법권을 누릴 수 있는 조계가 여러 곳에 설치되었다. 각국 조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늘면서, 1888년에 조선 최초의 호텔 인천 대불호텔이, 1891년에는 제물포구락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나라의 중요한 외국 손님을 맞는 고급 호텔은 바로 서울의 손탁호텔이었다.   구한 말, 정동구락부는 조선에 서양의 음식과 커피 문화를 소개하는 전초기지였다. 또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손님을 맞이했고, 통역사나 가이드, 짐꾼, 승마 등 각종 서비스가 가능했기 때문에 외국에서 온 정치가는 물론 조선을 찾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이용했다고 한다.   영화 <밀정>에 등장했던 조선인 최초 ⓒCOFFEE BARISTA   예술가들의 아지트, 다방   우리나라 최초이자 가장 대중적인 카페는 1909년 서울 남대문에 문을 연 ‘남대문역 끽다점’을 효시로 삼을 수 있다. 차를 마신다는 의미를 담은 ‘끽다’는 차 문화가 발달한 한자 문화권에서 사용하던 단어로, 일본에서는 근대화 초기부터 ‘찻집’이라는 뜻으로 ‘끽다점’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   1915년 조선 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 <조선 철도 여행안내> 책자에서는 ‘남대문역 끽다점 내부’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하고 있어 당시 모습을 알 수 있다. 최초이기는 하나, 남대문역 끽다점 역시 일본인 소유이자, 조선 총독부 직영의 가게였다. 그렇다면 조선인이 오픈한 최초의 카페는 어디일까.   제비 다방에서의 만남. (왼쪽부터) 이상, 박태원, 김소운 작가. ⓒCOFFEE BARISTA   현재까지는 1927년 국내 최초의 영화감독 이경손이 종로구 관훈동에 개업한 카페 ‘카카듀’라고 알려진다. 이경손이 직접 차를 끓여 내던 곳으로, 한글 간판과 이국적 분위기의 실내 장식 등 당시에는 볼 수 없는 과감한 분위기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경영이 미숙하고 손님도 많지 않아서 아쉽게도 수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고 한다.   최초의 카페 카카듀의 모습은 영화, 연극 등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2016년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에서 극 속 ‘이정출’의 비서 역할로 나왔던 ‘김사회’가 커피숍에서 정보원에게 정보를 받는 장면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듬해 1928년에는 영화배우 복혜숙이 종로2가에 ‘비너스’라는 카페를 열었으며, 뒤이어 극작가 유치진이 ‘브라다나스’를, 조각가 이순석이 ‘낙랑팔러’를, 시인 겸 소설가인 이상이 ‘제비’라는 이름으로 경성 시내에 다방을 열었다. 당시 명동, 종로, 소공동, 충무로 일대에는 문화예술인들이 경영하는 카페가 수십 곳이나 존재했다. 당시 카페는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작가 협회나 사무실 역할을 했던 셈이다.  
    • 커피대백과
    2020-04-02
  • [HISTORY] 명품 커피의 대명사, 루왁커피
    인도네시아에서 재배한 커피열매 ⓒ픽사베이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백만장자이지만 외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 ‘에드워드(잭 니콜슨 분)’은 금박 밸런싱 싸이폰(Balancing Siphon)으로 추출한 루왁커피를 즐겨 마신다. 비싼 가격으로 일명 황제 커피로 알려져 있는 루왁커피는 영화에서 부자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만큼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 몇 안 되는 커피 중의 하나다.   루왁은 긴 꼬리 사향고양이를 뜻하는 인도네시아 말로 루왁커피는 자바섬, 수마트라섬 일대에 서식하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든 인도네시아 특산 커피다. 야생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으면 소화기관에서 열매의 외피는 소화되고, 그 안의 생두는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발효되어 배설물로 배출되는데, 이를 볶고 갈아서 만든 것이 바로 루왁커피다.     영화 '버킷리스트'의 스틸컷. 주인공 '에드워드'가 루왁커피를 마시는 장면    고양이 배설물의 가치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한 커피가 이렇게까지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루왁커피 특유의 맛과 향, 그리고 희소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루왁커피는 고양이 뱃속에서 소화되는 과정에서 몸속의 효소로 인해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원두 특유의 쓴 맛 대신 특유의 맛과 향을 지니게 된다. 꽉 찬 보디감과 은은하게 유지되는 산미, 게다가 고소한 향과 함께하는 단맛은 루왁커피에서 만이 느낄 수 있는 특징이다.   하지만 연간 생산되는 루왁커피 원두의 양은 약 400~500킬로그램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량 생산이 불가능해 루왁커피 열매는 희소성만큼이나 가격 또한 상당하다. 코피루왁 원두는 400그램 기준 한화 50만 원 정도의 값어치를 지닌다. 2009년 국내에서 루왁커피를 처음 선보인 신라호텔은 당시 커피 한잔 가격을 무려 4만9천원으로 책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를 비롯 세계적으로 루왁커피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고 있다. 신라호텔 측에 따르면, 루왁커피는 손님들이 많이 찾는 메뉴는 아니지만 하루에 1~2잔씩은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루왁커피는 일반적인 커피 이상의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다.   커피를 재배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농민의 모습 ⓒ픽사베이   농민들의 커피에서 명품 커피로   그러나 이러한 루왁커피의 가치가 처음부터 명품 커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루왁커피도 그 시작은 식민지 인도네시아 농민들이 마시는 서민들의 음료에서 시작됐다.   18세기 초 인도네시아를 식민 지배했던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네시아 동쪽 섬인 자바와 수마트라에 커피 묘목을 이식해 성공함으로써 커피 재배를 통한 유럽 수출을 단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커피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동인도회사는 엄청난 가격으로 커피를 판매해 막대한 수익금을 챙기기 시작한다. 물론, 인도네시아 농부들은 동인도회사가 운영하는 커피 재배장에 강제 고용되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현지인 농부와 소작농은 커피 열매를 수확하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었다. 커피는 오로지 동인도회사의 수출을 통한 수익금으로만 이용됐다. 때문에 인도네시아 농민들은 자신의 농장에서 자란 커피를 현지인들에게 판매하거나 맛볼 수조차 없었는데, 커피의 명성을 알고 있던 몇몇 농부들은 커피 농장 주변에 야생하는 고양이의 배설물에서 나온 커피콩을 씻어 볶은 뒤 몰래 커피를 맛보기 시작했다.   커피 재배를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농민들 ⓒ픽사베이 ⓒ언플래쉬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채취한 원두를 이용해 만든 커피가 일반 커피보다 더 맛이 좋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농장주에게로 알려졌으며, 이는 현지 네덜란드인에게까지 전해졌다. 이 것이 오늘날 루왁커피가 명품커피로 재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루왁커피는 식민지 농민들의 커피가 명품커피로 재탄생한 아이러니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변질된 루왁커피   식민지배 속 수난의 역사에서 탄생한 루왁커피는 최근 또 한번의 수난을 겪고 있다. 커피의 희소성이 커지면서 루왁커피 원두를 얻기 위해 사향고양이를 불법 사육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다.   사향고양이의 배설물 채취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루왁커피 판매자들은 케이지에 사향고양이를 가둬 강제로 커피 열매를 먹이기 시작했다. 야생에서 발달된 후각으로 질 좋은 커피 열매를 섭취하는 사양고양이들이 닭장처럼 비좁고 지저분한 우리에서 강제로 커피열매를 먹으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상 증상을 보이고, 영양부족으로 사망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플래쉬   루왁커피의 희소성으로 인한 동물학대가 만행하자 아시아 각 지역의 동물보호단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루왁커피 보이콧을 선언했다. 각국의 바리스타 및 커피마스터 등의 전문인들 또한 루왁커피의 실태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사람의 손에서 불법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커피를 최고의 커피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다.   2004년 월드바리스타 챔피업십 우승자이자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바리스타인 팀 윈들보는 자신의 저서 ‘COFFEE with TIM WENDELBOE(커피 위드 팀 윈들보)에서 “낯선 동물의 소화 과정을 거쳐 나온 식품에 돈을 쓸 것이 아니라, 커피 농장에 가서 좋은 커피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더 배우는 데 써라”라며 루왁커피 소비자에 대한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명품 커피로서의 세계적인 명성과 함께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양면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루왁커피. 아이러니한 역사만큼이나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루왁커피가 세계 커피 역사에서 좋은 이야기들로만 가득 차게 될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 커피대백과
    2020-02-20
  • [HISTORY] 겨울이면 생각나는 ‘아인슈페너’의 300년 역사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거리 ⓒ황진원에디터   마부와 함께한 아인슈페너의 유래 유럽 카페 문화의 시작…커피하우스 빈의 카페거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함께하면 좋은 케이크 ‘자허 멜랑쥐’  /에디터 황진원   아인슈페너(einspanner) ⓒfreepik   따뜻한 커피 한 잔이 활력소가 되는 요즘 같은 날씨면 떠오르는 아인슈페너(einspanner). 아메리카노 위에 하얀 휘핑크림을 듬뿍 얹어 나오는 아인슈페너는 비주얼은 물론이고, 따뜻한 커피와 차가운 생크림의 절묘한 조화, 여기에 씁쓸함과 달콤함이 뒤섞여 탄생하는 뜻밖의 고소함이 인상적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재료가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내는 아인슈페너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언급되는 일명 ‘캐미’가 인상적인 커피다.   아인슈페너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절묘한 맛의 조화도 있지만, 300년이 넘는 긴 시간을 거슬러 현재까지 이어지는 커피의 역사에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된 아인슈페너는 ‘마차를 끄는 마부’라는 뜻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아인슈판너’라고 불렸다. 우리가 흔히 들어본 ‘비엔나 커피’의 본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커피는 과거 마부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한 손으로 고삐를 거머쥔 채 설탕과 생크림을 얹은 커피를 마셨다는 유래에서 탄생됐다.   오스트리아 빈의 전통 카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자허호텔 내의 카페 자허 ⓒ황진원에디터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아인슈페너가 30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오늘날 우리의 찻잔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과거 오스트리아 인들의 카페 문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빈의 카페 문화는 17세기 폴란드 출신 군인 게오르그 프란츠 콜시츠키로부터 시작된다. 오스만투르크의 침략을 막기위해 구원병으로 참여했던 그는 전쟁에서 패배한 오스만 군이 남기고간 보급품 중 커피 원두를 손에 넣게 되고, 이를 이용해 오스트리아 빈에 ‘푸른병의 집’이라는 카페를 오픈하게 된다. 지난해 국내에 오픈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블루보틀’은 바로 콜시츠키가 오스트리아 빈에 처음으로 오픈한 카페에서 따온 이름이다.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먼 길을 가야하는 유럽인들의 휴식처로서 긴 시간 사랑을 받아오던 카페는 이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합스부르크 왕가가 무너지고 자유주의와 시민계급이라는 새로운 지배계급의 등장과 함께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학계와 문화, 예술계를 이끌던 지도자층의 모임장소로 각광받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우리가 익히 들어온 빈의 ‘카페하우스’다. 오늘날 카페하우스는 음악, 철학, 미술, 건축,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거장들을 탄생시킨 역사의 공간으로 알려지고 있다.   카페 자허의 메뉴판, 디저트로 유명한 자허토르테는 레시피 개발자힌 자허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황진원에디터   뒤에서부터 '아인슈페너', '자허멜랑쥐', '자허토르테' ⓒ황진원에디터     지금도 오스트리아 빈의 시내에는 약 1200개가 넘는 카페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특히, 이들 카페들은 카페마다 제각각의 독특한 카페문화를 추구하며 빈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유럽적인 카페문화가 무엇인지를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들은 단순히 커피와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소비하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빈의 전통 카페 대다수는 다양한 연주가들의 공연과 문학인들의 대담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을 높게 산 유네스코는 2011년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거리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도 했다.   유럽 전통 카페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방문했다면 센트럴카페, 카페 자허 등에 방문해 아인슈페너와 함께 ‘자허 토르테’와 ‘멜랑쥐’를 꼭 맛보길 바란다. ‘자허 토르테’는 빈에서 탄생한 초콜릿 케이크로, 두 겹의 진하고 강렬한 향미의 초콜릿 스펀지 사이에 살구 잼을 듬뿍 바르고 겉에는 윤기가 빛나는 초콜릿을 입힌 것을 말한다. 이 케이크의 레시피를 처음 개발한 자허(Sacher)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멜랑쥐(Melange)는 혼합물이라는 뜻으로 커피와 거품 낸 우유를 반반 섞은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아인슈페너와 다른 전통 비엔나커피를 주문하려면 ‘멜랑쥐(Melange)’라고 말해야 쉽게 통한다.  
    • 커피대백과
    2020-02-05

실시간 커피대백과 기사

  • [한국의 역사, 그리고 커피➁] 커피의 과거와 미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커피를 좋아하는 일에도 이 이야기는 통용된다. 어떤 이의 눈에는 그저 검은 물 한잔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운명의 전환점이 되었을 역사 속 커피.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에 뿌리내리고, 시대와 함께 변해온 한 잔의 커피 이야기.   참고도서 <실용커피서적> 따비 / <커피인문학> 인물과 사상사 사진 동서식품 / 달콤커피 / (사)한국커피바리스타협회 / 한국네슬레 1978년 최초 동결건조 공법 만든 동서식품 맥심 ⓒCOFFEE BARISTA   달콤한 믹스커피의 맛, 한국을 사로잡다   유입 초기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커피는, 다방 문화의 확산과 함께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6.25 전쟁의 포화와 함께 다방 문화가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인스턴트커피의 활성화다. 해방과 동시에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군용 식량에 포함되어 있던 인스턴트커피가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했던 것. 당시 커피는 대부분이 미군 부대를 중심으로 유통되었지만,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서 알음알음 판매되었다.   인스턴트커피의 합법적인 유통 질서를 확립하고 외화 낭비를 막기 위해 우리나라는 자체 커피 생산에 대한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가장 먼저 동서식품이 1970년 미국 제너럴 푸즈와 기술 제휴를 통해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커피 ‘맥스웰 하우스’를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맥스웰 하우스는 1970년대 초 국내 커피시장 대부분을 점유하면서 꽤 오랜 기간 호황을 누렸다.   동서식품은 1974년 식물성 커피 크리머인 프리마를 자체 생산하였고, 1976년 세계 최초로 커피믹스를 개발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커피자판기가 등장했고, 이맘때쯤 인스턴트커피 시장에 뛰어든 두산그룹과 합작한 네슬레의 등장으로 드디어 국내 커피시장은 맥심과 초이스 커피로 크게 양분되었다.   1990년대부터 핸드드립 커피를 선보인, 국내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선생. ⓒCOFFEE BARISTA   ‘핸드드립’의 시대가 열리다   프리미엄 커피 같은 마케팅 용어와는 다른 의미의 ‘스페셜티 커피’는 쉽게 말해 스페셜티커피협회에서 정한 기준 평가에서 100점 중 80점 이상을 받은 우수한 등급의 커피를 말한다. 국내 스페셜티 커피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커피애호가들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1서3박’이라 불리는 국내 1세대 바리스타들로, 1980년대 국내 최초로 스페셜티 커피를 이용한 핸드드립 커피를 선보였다.   1990년대 중반 명동에서 융드립으로 유명했던 (故)서정달 선생, 동경에서 배운 드립 커피를 소개한 (故)박원준 선생, 오사카 출신으로 절대미각이라 불렸던 박상홍 선생, 현재 현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보헤미안 커피 박이추 선생이다.   박이추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로 단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커피전문가 과정을 개설하였으며, 카페 보헤미안을 강릉으로 옮기면서 강릉이 커피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는 데 한 몫을 담당했다. 또 현재 강릉 보헤미안 커피공장을 성황리에 운영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국내 최초 원두커피 전문점 ‘자뎅’이 압구정동에 처음 가게를 열면서 에스프레소 커피의 대중화가 시작되었으며, 1999년 스타벅스가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1호점을 연 것을 시작으로 국내 커피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기 시작했다.   2018년 달콤커피가 처음 선보인 로봇카페 ‘비트’, 주문부터 결제까지 앱 하나로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COFFEE BARISTA   로봇, 커피를 내리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인공지능과 로봇에 주목하면서, 사람의 손을 대체할 수 있는 무인 서비스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은 커피업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단순하게 음료를 따르기만 하는 수준의 로봇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문에서 서빙까지, 기존에 사람이 하던 일을 로봇이 대신하고 있는 가게가 꽤 많이 늘었다. 다양한 ICT 기술을 적용한 로봇 바리스타는 맛은 둘째 치고, 색다른 볼거리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처럼 무인화 바람이 거세지는 주요 이유는 무엇일까. 비대면 거래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느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또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직무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비용 절감에 고심하던 점주들이 결단을 내린 것이다.   2018년 초 달콤커피가 로봇카페 ‘비트’를 오픈해 고객들에게 로봇 바리스타의 손맛을 보여 주었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라운지엑스에서는 결제에서부터 핸드드립, 서빙까지 모두를 로봇의 손으로 서비스한다. 로봇 바리스타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드립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수정할 수 있으며, 동시 추출방식을 통해 기존 드리핑보다 최대 2.6배 빠르게 핸드드립 커피를 손님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나 로봇카페는 좁은 공간에도 설치할 수 있고, 유지비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이익이 된다는 평가다. 남는 인건비를 매장 관리, 조리 등 다른 곳에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또 매출 관리 시스템을 통해 정확한 수입 집계 등이 가능하다.   로봇 카페가 늘어난다고 해서 사람의 일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다. 재료 채우기, 청소, 정리 등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다만 커피 제조에 묶여 있던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로봇이 제공하는 커피가 일반 자판기 커피와 다를 바 없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고,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애착이나 정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이 유행을 막을 대안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한국능력교육개발원의 전석한 원장. ⓒCOFFEE BARISTA   ‘커피 바리스타’ 새로운 직업이 되다   커피바리스타 자격을 국내에 가장 먼저 등록 도입한 곳은 ‘(사)한국능력교육개발원(이하 한능원)’이다. 전석한 원장은 “자격법 관련해서 서류를 접수하러 갔는데, 담당 공무원이 ‘다방 커피도 자격이 필요해요?’라고 되물어올 정도였다”고 당시의 일화를 털어놓기도 했으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한능원은 2007년부터, 미등록 커피 자격증이 난무하던 당시 상황을 타개하고 커피바리스타 자격을 규정화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진행해왔다. 자격 등록 서류를 갖추기 위해 매번 직접 발로 뛰어야 했고, 자료 부족으로 접수를 거절당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러나 자격 발급에 대한 국가 인증을 받고 나서도 막막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자격증 교육을 위한 교재, 학원 등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1999년 스타벅스가 이화여자대학교 앞에 1호점을 연 것을 시작으로 국내 에스프레소 시장에 대한 관심이 늘었으나, 외국 브랜드를 중심으로 형성된 커피 시장 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2007년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공전에 없던 히트를 치면서 바리스타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점차적으로 자격 지원자들의 수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바리스타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기면서 점차 새로운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관련 자격을 발급하는 기관이 우후죽순으로 늘면서 자격증 남발로 인해 커피바리스타 자격이 하향평준화 되었다는 점이다. 커피바리스타 자격을 따서 취업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자격증 취득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커피 바리스타 자격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자격증을 따고, 취업으로 직결될 수 있어야 한다.   전석한 원장은 커피바리스타 권리와 자격 보호를 위해 기존 1, 2급 자격이외에 커피마스터 자격시험을 만들었으며, 현재는 커피마스터 자격의 국가공인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커피마스터 자격 합격률은 약 20%선, 자격을 보유한 사람은 300여 명으로 다른 민간 자격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숫자다. 자격시험이 어렵다보니 지원자가 적고, 이로 인한 수익도 적지만 바리스타들에게 꼭 필요한 자격이라는 것이 전 원장의 신념이다. 또 바리스타들의 권리와 이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사)한국능력교육개발원에서 발급하던 커피 관련 자격을 (사)한국커피바리스타협회(KcBA)에 일임해 운영하고 있다.  
    • 커피대백과
    2020-04-03
  • [한국의 역사, 그리고 커피①] 근대사에서 찾은 커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커피를 좋아하는 일에도 이 이야기는 통용된다.  어떤 이의 눈에는 그저 검은 물 한잔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운명의 전환점이 되었을 역사 속 커피.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에 뿌리내리고, 시대와 함께 변해온 한 잔의 커피 이야기.   참고도서<실용커피서적> 따비 / <커피인문학> 인물과 사상사 사진국가기록원 / 서울역사박물관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해외문화홍보원 / 인천 화도진도서관   1917년 연미복을 입은 고종황제의 모습 ⓒCOFFEE BARISTA   조선의 커피   국내 커피의 역사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일단 자료가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 국내에 처음 커피가 들어왔는지 조차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첫 커피 애호가로 고종을 떠올리지만, 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편이다. 엄밀히 말해 고종이 마신 커피는 우리나라의 첫 커피가 아니라는 것.   1896년 아관파천이라는 역사적 혼란 속에서 과연 그가 여유롭게 커피에 심취할 수 있었는지, 덕수궁 ‘정관헌’이 정말 고종이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던 곳인지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고종이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고 알려진 덕수궁 정관헌. ⓒCOFFEE BARISTA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 <한성순보> 1884년 3월 27일자에는 “이탈리아 정부는 시험 삼아 차와 가배를 시칠리아 섬에 심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초대 주한 영국 영사를 지낸 윌리엄 칼스가 1884년 5월, 우리나라에 부임하면서 쓴 <조선 풍물지>에는 “한양에 부임하면서 숙박 시설이 없어 조선 세관의 책임자인 묄렌도르프의 집에서 묵었는데, 뜨거운 커피가 제공되어 고마웠다”고 쓰여 있다.   이외에도 아관파천보다 10년 앞선 1886년, 관료였던 윤치호가 중국 상하이에서 쓴 일기에는 “돌아오는 길에 가배관에 가서 두 잔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왔다”라고 적혀 있으며, 이후 1897년 독립신문 영문판에 ‘자바 커피’라는 단어가 나오는 걸 보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커피가 등장한 시점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마셨던 때보다 훨씬 이를 것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앙투아네트 손탁(왼쪽에서 세 번째). ⓒCOFFEE BARISTA   카페라는 새로운 문물을 만나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카페는 1902년 고종의 후원으로 독일계 프랑스인 여성 앙투아네트 손탁이 서울 정동에 세운 손탁호텔의 1층에 위치한 정동구락부라고 알려져있다. 구락부는 공동의 관심사나 목표를 가지고 정보를 나누면서 함께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로 ‘클럽’의 일본식 음역어이다.   고종은 당시로서는 꽤 유난스러운 커피 마니아였음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1895년 발생한 을미사변으로 인해 1896년 2월부터 황태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게 되면서 고종은 러시아 공사 카를 베베르를 통해 처음으로 커피를 접하게 되었다. 이 시기, 고종의 커피 시중을 들었던 사람이 바로 손탁으로, 이 때의 인연에 힘입어 손탁 호텔까지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손탁호텔 1층에 위치했던 정동구락부. ⓒCOFFEE BARISTA   인천 제물포항이 개항되면서 인천은 외국인들이 자유로이 거주하면서 치외 법권을 누릴 수 있는 조계가 여러 곳에 설치되었다. 각국 조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늘면서, 1888년에 조선 최초의 호텔 인천 대불호텔이, 1891년에는 제물포구락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나라의 중요한 외국 손님을 맞는 고급 호텔은 바로 서울의 손탁호텔이었다.   구한 말, 정동구락부는 조선에 서양의 음식과 커피 문화를 소개하는 전초기지였다. 또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손님을 맞이했고, 통역사나 가이드, 짐꾼, 승마 등 각종 서비스가 가능했기 때문에 외국에서 온 정치가는 물론 조선을 찾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이용했다고 한다.   영화 <밀정>에 등장했던 조선인 최초 ⓒCOFFEE BARISTA   예술가들의 아지트, 다방   우리나라 최초이자 가장 대중적인 카페는 1909년 서울 남대문에 문을 연 ‘남대문역 끽다점’을 효시로 삼을 수 있다. 차를 마신다는 의미를 담은 ‘끽다’는 차 문화가 발달한 한자 문화권에서 사용하던 단어로, 일본에서는 근대화 초기부터 ‘찻집’이라는 뜻으로 ‘끽다점’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   1915년 조선 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 <조선 철도 여행안내> 책자에서는 ‘남대문역 끽다점 내부’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하고 있어 당시 모습을 알 수 있다. 최초이기는 하나, 남대문역 끽다점 역시 일본인 소유이자, 조선 총독부 직영의 가게였다. 그렇다면 조선인이 오픈한 최초의 카페는 어디일까.   제비 다방에서의 만남. (왼쪽부터) 이상, 박태원, 김소운 작가. ⓒCOFFEE BARISTA   현재까지는 1927년 국내 최초의 영화감독 이경손이 종로구 관훈동에 개업한 카페 ‘카카듀’라고 알려진다. 이경손이 직접 차를 끓여 내던 곳으로, 한글 간판과 이국적 분위기의 실내 장식 등 당시에는 볼 수 없는 과감한 분위기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경영이 미숙하고 손님도 많지 않아서 아쉽게도 수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고 한다.   최초의 카페 카카듀의 모습은 영화, 연극 등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2016년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에서 극 속 ‘이정출’의 비서 역할로 나왔던 ‘김사회’가 커피숍에서 정보원에게 정보를 받는 장면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듬해 1928년에는 영화배우 복혜숙이 종로2가에 ‘비너스’라는 카페를 열었으며, 뒤이어 극작가 유치진이 ‘브라다나스’를, 조각가 이순석이 ‘낙랑팔러’를, 시인 겸 소설가인 이상이 ‘제비’라는 이름으로 경성 시내에 다방을 열었다. 당시 명동, 종로, 소공동, 충무로 일대에는 문화예술인들이 경영하는 카페가 수십 곳이나 존재했다. 당시 카페는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작가 협회나 사무실 역할을 했던 셈이다.  
    • 커피대백과
    2020-04-02
  • [HISTORY] 명품 커피의 대명사, 루왁커피
    인도네시아에서 재배한 커피열매 ⓒ픽사베이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백만장자이지만 외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 ‘에드워드(잭 니콜슨 분)’은 금박 밸런싱 싸이폰(Balancing Siphon)으로 추출한 루왁커피를 즐겨 마신다. 비싼 가격으로 일명 황제 커피로 알려져 있는 루왁커피는 영화에서 부자들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만큼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는 몇 안 되는 커피 중의 하나다.   루왁은 긴 꼬리 사향고양이를 뜻하는 인도네시아 말로 루왁커피는 자바섬, 수마트라섬 일대에 서식하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든 인도네시아 특산 커피다. 야생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으면 소화기관에서 열매의 외피는 소화되고, 그 안의 생두는 소화되지 않은 상태로 발효되어 배설물로 배출되는데, 이를 볶고 갈아서 만든 것이 바로 루왁커피다.     영화 '버킷리스트'의 스틸컷. 주인공 '에드워드'가 루왁커피를 마시는 장면    고양이 배설물의 가치   동물의 배설물을 이용한 커피가 이렇게까지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루왁커피 특유의 맛과 향, 그리고 희소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루왁커피는 고양이 뱃속에서 소화되는 과정에서 몸속의 효소로 인해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원두 특유의 쓴 맛 대신 특유의 맛과 향을 지니게 된다. 꽉 찬 보디감과 은은하게 유지되는 산미, 게다가 고소한 향과 함께하는 단맛은 루왁커피에서 만이 느낄 수 있는 특징이다.   하지만 연간 생산되는 루왁커피 원두의 양은 약 400~500킬로그램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량 생산이 불가능해 루왁커피 열매는 희소성만큼이나 가격 또한 상당하다. 코피루왁 원두는 400그램 기준 한화 50만 원 정도의 값어치를 지닌다. 2009년 국내에서 루왁커피를 처음 선보인 신라호텔은 당시 커피 한잔 가격을 무려 4만9천원으로 책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를 비롯 세계적으로 루왁커피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고 있다. 신라호텔 측에 따르면, 루왁커피는 손님들이 많이 찾는 메뉴는 아니지만 하루에 1~2잔씩은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루왁커피는 일반적인 커피 이상의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을 것이 분명하다.   커피를 재배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농민의 모습 ⓒ픽사베이   농민들의 커피에서 명품 커피로   그러나 이러한 루왁커피의 가치가 처음부터 명품 커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루왁커피도 그 시작은 식민지 인도네시아 농민들이 마시는 서민들의 음료에서 시작됐다.   18세기 초 인도네시아를 식민 지배했던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네시아 동쪽 섬인 자바와 수마트라에 커피 묘목을 이식해 성공함으로써 커피 재배를 통한 유럽 수출을 단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커피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동인도회사는 엄청난 가격으로 커피를 판매해 막대한 수익금을 챙기기 시작한다. 물론, 인도네시아 농부들은 동인도회사가 운영하는 커피 재배장에 강제 고용되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현지인 농부와 소작농은 커피 열매를 수확하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었다. 커피는 오로지 동인도회사의 수출을 통한 수익금으로만 이용됐다. 때문에 인도네시아 농민들은 자신의 농장에서 자란 커피를 현지인들에게 판매하거나 맛볼 수조차 없었는데, 커피의 명성을 알고 있던 몇몇 농부들은 커피 농장 주변에 야생하는 고양이의 배설물에서 나온 커피콩을 씻어 볶은 뒤 몰래 커피를 맛보기 시작했다.   커피 재배를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농민들 ⓒ픽사베이 ⓒ언플래쉬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채취한 원두를 이용해 만든 커피가 일반 커피보다 더 맛이 좋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농장주에게로 알려졌으며, 이는 현지 네덜란드인에게까지 전해졌다. 이 것이 오늘날 루왁커피가 명품커피로 재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루왁커피는 식민지 농민들의 커피가 명품커피로 재탄생한 아이러니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변질된 루왁커피   식민지배 속 수난의 역사에서 탄생한 루왁커피는 최근 또 한번의 수난을 겪고 있다. 커피의 희소성이 커지면서 루왁커피 원두를 얻기 위해 사향고양이를 불법 사육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다.   사향고양이의 배설물 채취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루왁커피 판매자들은 케이지에 사향고양이를 가둬 강제로 커피 열매를 먹이기 시작했다. 야생에서 발달된 후각으로 질 좋은 커피 열매를 섭취하는 사양고양이들이 닭장처럼 비좁고 지저분한 우리에서 강제로 커피열매를 먹으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상 증상을 보이고, 영양부족으로 사망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플래쉬   루왁커피의 희소성으로 인한 동물학대가 만행하자 아시아 각 지역의 동물보호단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루왁커피 보이콧을 선언했다. 각국의 바리스타 및 커피마스터 등의 전문인들 또한 루왁커피의 실태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사람의 손에서 불법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커피를 최고의 커피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다.   2004년 월드바리스타 챔피업십 우승자이자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바리스타인 팀 윈들보는 자신의 저서 ‘COFFEE with TIM WENDELBOE(커피 위드 팀 윈들보)에서 “낯선 동물의 소화 과정을 거쳐 나온 식품에 돈을 쓸 것이 아니라, 커피 농장에 가서 좋은 커피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더 배우는 데 써라”라며 루왁커피 소비자에 대한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명품 커피로서의 세계적인 명성과 함께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양면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루왁커피. 아이러니한 역사만큼이나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루왁커피가 세계 커피 역사에서 좋은 이야기들로만 가득 차게 될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 커피대백과
    2020-02-20
  • [HISTORY] 겨울이면 생각나는 ‘아인슈페너’의 300년 역사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거리 ⓒ황진원에디터   마부와 함께한 아인슈페너의 유래 유럽 카페 문화의 시작…커피하우스 빈의 카페거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함께하면 좋은 케이크 ‘자허 멜랑쥐’  /에디터 황진원   아인슈페너(einspanner) ⓒfreepik   따뜻한 커피 한 잔이 활력소가 되는 요즘 같은 날씨면 떠오르는 아인슈페너(einspanner). 아메리카노 위에 하얀 휘핑크림을 듬뿍 얹어 나오는 아인슈페너는 비주얼은 물론이고, 따뜻한 커피와 차가운 생크림의 절묘한 조화, 여기에 씁쓸함과 달콤함이 뒤섞여 탄생하는 뜻밖의 고소함이 인상적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재료가 만나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내는 아인슈페너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언급되는 일명 ‘캐미’가 인상적인 커피다.   아인슈페너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절묘한 맛의 조화도 있지만, 300년이 넘는 긴 시간을 거슬러 현재까지 이어지는 커피의 역사에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된 아인슈페너는 ‘마차를 끄는 마부’라는 뜻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아인슈판너’라고 불렸다. 우리가 흔히 들어본 ‘비엔나 커피’의 본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커피는 과거 마부들이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한 손으로 고삐를 거머쥔 채 설탕과 생크림을 얹은 커피를 마셨다는 유래에서 탄생됐다.   오스트리아 빈의 전통 카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자허호텔 내의 카페 자허 ⓒ황진원에디터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아인슈페너가 300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오늘날 우리의 찻잔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과거 오스트리아 인들의 카페 문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빈의 카페 문화는 17세기 폴란드 출신 군인 게오르그 프란츠 콜시츠키로부터 시작된다. 오스만투르크의 침략을 막기위해 구원병으로 참여했던 그는 전쟁에서 패배한 오스만 군이 남기고간 보급품 중 커피 원두를 손에 넣게 되고, 이를 이용해 오스트리아 빈에 ‘푸른병의 집’이라는 카페를 오픈하게 된다. 지난해 국내에 오픈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 ‘블루보틀’은 바로 콜시츠키가 오스트리아 빈에 처음으로 오픈한 카페에서 따온 이름이다.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먼 길을 가야하는 유럽인들의 휴식처로서 긴 시간 사랑을 받아오던 카페는 이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합스부르크 왕가가 무너지고 자유주의와 시민계급이라는 새로운 지배계급의 등장과 함께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학계와 문화, 예술계를 이끌던 지도자층의 모임장소로 각광받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우리가 익히 들어온 빈의 ‘카페하우스’다. 오늘날 카페하우스는 음악, 철학, 미술, 건축,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거장들을 탄생시킨 역사의 공간으로 알려지고 있다.   카페 자허의 메뉴판, 디저트로 유명한 자허토르테는 레시피 개발자힌 자허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황진원에디터   뒤에서부터 '아인슈페너', '자허멜랑쥐', '자허토르테' ⓒ황진원에디터     지금도 오스트리아 빈의 시내에는 약 1200개가 넘는 카페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특히, 이들 카페들은 카페마다 제각각의 독특한 카페문화를 추구하며 빈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유럽적인 카페문화가 무엇인지를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들은 단순히 커피와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닌, 시간과 공간을 소비하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빈의 전통 카페 대다수는 다양한 연주가들의 공연과 문학인들의 대담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을 높게 산 유네스코는 2011년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거리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도 했다.   유럽 전통 카페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방문했다면 센트럴카페, 카페 자허 등에 방문해 아인슈페너와 함께 ‘자허 토르테’와 ‘멜랑쥐’를 꼭 맛보길 바란다. ‘자허 토르테’는 빈에서 탄생한 초콜릿 케이크로, 두 겹의 진하고 강렬한 향미의 초콜릿 스펀지 사이에 살구 잼을 듬뿍 바르고 겉에는 윤기가 빛나는 초콜릿을 입힌 것을 말한다. 이 케이크의 레시피를 처음 개발한 자허(Sacher)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멜랑쥐(Melange)는 혼합물이라는 뜻으로 커피와 거품 낸 우유를 반반 섞은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아인슈페너와 다른 전통 비엔나커피를 주문하려면 ‘멜랑쥐(Melange)’라고 말해야 쉽게 통한다.  
    • 커피대백과
    2020-02-05
  • 맛과 향이 제각각인 ‘원두커피 종류’의 세계
      국내에서도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커피 원두에 따른 다양한 맛을 즐기려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커피가 만들어지는 데 기본 요소라 할 수 있는 원두는 커피체리의 씨앗을 볶은 것으로, 재배환경이나 기법, 품종에 따라 다른 맛과 향을 지닌다. 때문에, 다양한 원산지에서 재배되는 원두의 특징들만 잘 파악하더라도 커피를 마시는 데 있어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원두 커피에 입문하는 이들을 위해 대중적으로 유명한 원산지별 대표 원두 4종의 맛과 향을 살펴본다.   <케냐AA>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명산의 동쪽 케냐에서 재배되는 커피다. 해발 1500m를 훌쩍 넘어가는 케냐의 자연환경은 커피를 생산하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으로, 이는 최고의 커피 원두를 재배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유럽인이 가장 선호하는 강렬한 향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 무겁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맛이 일품이다. 커피 수확시기는 10~12월과 6~8월 두 차례 이루어진다. 묵직한 바디감과 오묘한 과일 향, 가볍지 않은 신맛이 특징. 일반적으로 강하게 볶으면 감미로운 향과 과일의 단맛, 쌉싸래한 맛을 조화롭게 느낄 수 있다. 워낙 대중적인 맛을 가지고 있어 커피 입문자들에게 주로 추천되며 카페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원두 중 하나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라비카 종의 원산지로 아프리카 최대의 커피 생산국인 에티오피아 지역의 고지대에서 재배되는 원두다. 에티오피아 지역에서 자생하는 원두 품종은 대략 3000종 이상으로 커피나무의 형태, 잎 모양 등 겉모습부터 무척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예가체프 지역의 콩이 가장 유명하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는 향긋한 과일 향미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콩의 크기도 다양해 그 크기에 따라 향미가 다르다. 풍부한 향과 바디감이 일품인 예가체프는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있는 원두다. 하지만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 특유의 산미가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브라질 산토스> 아라비카 원두 최대 산지인 브라질 원두의 특징은 부드러운 산미와 적당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어 커피블랜딩을 할 때 기초원두로 많이 사용 된다는 점이다. 특히, 가장 대중적인 원두로 불리며 브라질 품종인 산토스는 밸런스 잡힌 조화로 원두 커피를 처음 마시는 이들에게 가장 추천되는 원두중 하나다. 균일한 로스팅으로 부드러운 풍미와 적당한 쓴맛이 유지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브라질 산토스에는 여러 등급이 존재하는데, 등급에 따라 원두의 크기나 맛의 깊이 등이 달라진다. 대표적인 원두로는 브라질 산토스 NO.2가 있다.    <콜롬비아 수프레모> 중남미의 대표적인 커피로 콜롬비아 커피 중 최고로 비옥한 지역에서 생산된다. 수프레모의 특징은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부드러움’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일드 커피의 대명사로 가장 무난하고 대중적인 인지도를 자랑한다. 케냐 AA와 함께 카페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원두다. 수확은 10~2월 4~6월 두번 이루어지며 가공방법은 습식법입니다. 부드러운 맛과 함께 감미로운 아로마 향과 독특한 호두 향을 가지고 있다. 산미가 적고 바디감과 향, 단맛이 풍부하므로 신맛을 싫어한다면 콜롬비아 수프레모가 제격이다.  
    • 커피대백과
    202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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