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7-05(월)

[인터뷰] 커피가 무르익는 시간, 유튜버 바리스타 안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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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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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BARISTA

 

유튜버 바리스타 안치훈

 

어제와는 사뭇 다른 찬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초겨울, 이른 아침부터 경기도 광주로 향했다. 바로 안치훈 바리스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현관문을 활짝 열면서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바리스타에게 커피는 자신을 내보이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던가. 이제 그가 자신을 보여주는 방법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기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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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바리스타 안치훈

 

커피가 무르익는 시간

 

먼저 털어놓자면 본 기자는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중 하나다. 안치훈 바리스타의 유튜브를 가끔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의 담백한 말솜씨와 꾸준함, 그리고 커피 애호가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다양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느 유튜버들과는 사뭇 다른 진솔한 눈길로 바리스타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커피 추출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에서부터 카페의 매출이나 상권 분석, 바리스타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다소 전문적인 도서 소개, 전문가 또는 유명 바리스타와의 열기 넘치는 대담까지, 그의 채널에는 바리스타라면 한 번 쯤 품어 보았을 만한 궁금증과 그에 대한 해답이 녹아 있었다.

 

올해 초 다니던 커피 회사를 갓 퇴사하고, 유튜버의 길로 접어든 그는 짧은 시간 만에 3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면서, 말 많고 탈도 많은 유튜브계에 순조롭게 안착했다. 실제로 마주한 안치훈 바리스타는 차분한 말투나 외모와는 달리 커피에 대한 화산 같은 열정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에디터의 혀를 내두르게 만든 것은 언제나 한결같은 그의 성실함이었다.

 

누구나 꿈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 꿈을 이루는 원동력이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지지 않는 열정이라면, 그는 이미 그 꿈을 이루었다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안치훈 바리스타의 시간은 몇 번의 성공과 실패, 희비가 엇갈리는 성장 드라마 같았다. 그 시간이 그를 오히려 단단히 연마시켰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과연 그 주인공이 어떻게 성장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올해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면서 커피 공부에 대해 새로운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안치훈 바리스타와 나누었던 1시간 남짓의 짧고 강렬했던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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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BARISTA

 

어느 날 유튜브를 보는데, 중국에서 커피사업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사업이었는지 궁금하다

중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부터 사업에 욕심이 있었다. 벤처 창업 수업을 듣고, 이왕 사업을 할 계획이라면 빨리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아이템으로 사업할 것인지 정하지도 않은 채 기숙사에 함께 사는 한국인 친구 두 명을 설득했다. 그때가 23살 때였다. 당시 중국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피자헛이 굉장히 유행했다. 그래서 생각한 아이템이 저가 배달형 피자였다. 그런데 피자 사업을 준비하다가 생각해보니 중국 소비자들이 어떤 걸 원하는지 정도는 알고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싶었다. 중국에서 일을 해보자라고 친구들과 의견을 모았고, 일자리를 구하다가 마침 중국에서 카페 창업을 준비하던 한국인 대표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결국은 커피 창업을 생각하게 된 것인가

맞다. 창업을 도와주다가 커피 일에 매력을 느꼈다. 한국으로 와서 3개월 정도 배우고 다시 중국으로 가서 무작정 사무실을 임대했다. 또 커피 납품을 할 요량으로 로스팅 머신도 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이없는 행동이었다. 3개월 배우고 기계부터 샀으니 말이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중국에서는 외국인이 사무실을 임대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그래서 중국인 친구를 설득해서 그의 명의로 사무실을 얻었다. 거기에 태환 1kg 로스팅 머신을 설치했다.

 

로스팅 원두 납품을 하려면 거래처가 필요한데, 영업은 어떻게 했나

운이 좋게도 대형 프랜차이즈를 준비하는 중국인 대표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통역으로 참가했고 메뉴 세팅을 담당하게 됐다. 600평 규모에 바리스타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때부터 다시 커피를 배웠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좋게 보였는지 중국인 대표가 우리 업체 원두를 납품받겠다고 했다. 그래서 밤새도록 1kg 짜리 머신으로 원두를 볶았다. 한 달에 약 1t 정도. 기계가 작아서 매일 밤새가면서 원두를 볶았다.

 

1kg 머신으로 원두를 그렇게나 볶았다니,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역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일단 주요 거래처가 다 한국 업체였기 때문에 원가율이 너무 높아 프랜차이즈 납품가를 맞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뭘 좀 몰라서 핸드픽을 30%나 했다. 어떻게 생산성 있게 블렌딩을 해야 하고, 이 정도 원두로 커피를 만들면 어떤 커피가 완성되는지를 몰랐다. , 한 달 700kg에서 1t을 작은 기계 한 대로 볶아대니, 로스팅 머신이 버티지를 못하는 상태였다. 중국은 생산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서 결국 카페와는 일이 끊어졌다. 재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은 없었다.

 

첫 사업이 너무나 아쉽게 끝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대형 카페를 세팅한 경험을 얻었고 무엇보다 한국 사람이 중국에서 그런 일을 했다는 첫 사례를 남겼다. 그래서 카페 컨설팅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큰 매장을 상대로 일하고 나니, 작은 카페 메뉴를 세팅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때쯤, 다니던 대학교에서 교내 카페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래서 교내에 카페를 창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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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BARISTA

 

교내 카페면 이른바 대박이 아닌가, 카페를 운영하는 일은 어땠는지 알고 싶다

당시 학교에는 국내 커피 전문 브랜드인 핸즈커피가 이미 입점해 있었다. 그쪽은 매장이 아주 컸고 우리 쪽 매장은 아주 작았다. 그런데도 우리 카페가 장사가 너무 잘되었다. 문제는 컨설팅은 많이 해봤지만, 매장 운영 경험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가율을 제대로 계산하지도 못했다. 판매는 굉장히 많이 했는데, 인건비와 감가상각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장사가 너무 잘되니까, 나중에는 학교 측에서 자꾸 말을 바꾸기까지 했다.

 

학교에서 카페를 먼저 제안했는데, 너무 억울한 상황이 아닌가

중국이 원래 좀 그렇다. ‘확실하다는 것이 없다. 처음에는 억울하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이용당했다고 생각하고 안주하면 진짜 이용을 당하는 거고, 이 일을 발판 삼아 스스로 변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때부터 잠도 줄여가면서 계속 일만 했던 거 같다.

 

그래서 교내 카페 운영은 어떻게 되었나

카페 운영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대학교 졸업장은 필요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카페 운영은 내가 도맡았다. 그런데 알음알음으로 원두를 납품하고 학교까지 다니느라 군대를 미뤄두고 있었다. 이제 더 미룰 수가 없어서 친구들에게 맡기고 군대에 갔다. 그런데 카페 운영이 힘들다는 소식이 들렸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내가 다시 맡겠다고 했다. 정리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또 초기에 투자받은 비용이 빚으로 남아 있었다. 1천만원 정도. 결국 제대 전까지는 지인에게 대리 운영을 맡겼다.

 

군대 간 사이에 문제가 생겼는데, 친구들이 운영을 잘못했던 건 아닌가

친구들이 운영을 못했다거나 내가 운영을 잘했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가 운영했을 때 미래의 소득을 끌어다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쉽게 착오하는 게 하나 있다. 임대료나 운영비를 제외하고 5백만원이 남았다면 그걸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인이 버는 5백만원과 자영업자가 버는 5백만원은 사실상 그 무게가 다르다. 직장인이 버는 5백만원은 꾸준한 소득이지만, 자영업자가 버는 5백만원은 언

1백만원이 될지, 50만원이 될지 모르는 돈이다. 가치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5백만원을 벌고 있다고 아 내가 잘 벌고 있구나.’ 안심해서는 안된다. 그때 나도 그걸 몰랐다. 감가상각비를 계산하지 않고 이익이 생기는대로 끌어쓰니까 그걸 나중에 메꾸어야 했다.

 

그래서 친구들과는 어떻게 되었나

당시의 카페 운영은 3명의 인건비가 나오기는 힘든 구조였다. 거기에 서로 기대치도 있었다. 나는 좀 더 장기적으로 보고 가자는 마음이었지만, 친구들에게는 그게 버거웠던 것 같다. 그래서 친구들이 정리하고 카페에 서 손을 뗐다. 그러면서 인건비가 줄었고 상황이 점점 나아졌다. 또 카페는 초반에 들어가는 비용의 임계점을 지나면 나중에는 들어가는 비용이 조금씩 줄어든다. 때마침 그 시기가 지나면서 나는 배당금을 받아서 빚을 청산했다.

 

교내 카페는 결국 졸업할 때까지 계속 운영한 것인가

아니다. 허가 문제 때문에 교내 카페를 닫을 때 즈음, 중국의 카페베네 지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규모가 꽤 큰 곳이었는데 그때가 진짜 힘든 시기였다. 이미 콘셉트가 잡힌 매장에서 고객의 인식을 바꾸는 데 얼마나 큰 노력과 비용이 들어가는지를 절실하게 느꼈다. 가게 운영으로 매출을 올려야 하는데, 그건 너무 장기적인 전략이었다. 당시 그야말로 몸과 영혼을 갈아 넣었다. 그런데도 잘되지 않았고 1년 남짓 일하고 그만두게 됐다. 또 당시 계약상의 문제도 있었다.

 

유난히 불공정한 계약에 자주 얽히는 것 같다. 안타깝다

그러게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스스로가 너무 긍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나이에 그만한 경험을 가진 사람은 아마 없었을것 같다. 다행히 빚도 없었고, 고생은 했지만 내 돈 안 들이고 좋은 경험을 많이 한 셈이 되었다. 그래도 과정 자체를 열심히 하니까 계속 기회가 생기더라. 카페베네를 그만두고 중국 커피바리스타대회 심사와 운영하는 일을 했는데 그때 코페아커피 최지욱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다. 대표님이 같이 일하자고 제안해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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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BARISTA

 

오 진짜 축하해야 할 일이다. 코페아커피에서는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

법인 영업 담당 관련 업무를 했다. 중국 쪽 업무를 하려고 코페아커피에 왔는데 일이 갑작스레 취소되면서 업무에도 변화가 약간 있었다. 규모가 있는 원두 회사에서 일하면 경험을 더 많이 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신세계였다. 납품처를 돌아다니면서 관리, 교육하고 매장 세팅하는 일을 했다. 물론 법인 영업도 하고 관리도 했다.

 

개인 가게를 오래 하다가 직장에서 일해보니 어땠는가. 월급을 받는 재미가 쏠쏠하지는 않았는지

첫 직장생활이다 보니, 무엇보다 굉장히 열심히 했다. 매일 회사에 2~3시간씩 먼저 출근해서 청소도 다 해놓고, 책도 읽고 열심히 일했다. 진짜 내 회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회사를 계속 다니다 보니 스스로 피동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천장이 생긴 느낌이라고 할까. 또 직장 일은 업무를 분담하다 보니, 내가 모르는 분야가 계속 생겼다. 언젠가 모든 일을 혼자서 할 때가 분명히 올 텐데 그때가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도 생겼다.

 

그럼 코페아에서는 얼마나 일을 했는가

코페아에서 2년 정도 일했고, 올해 초에 퇴사했다. 그래도 최지욱 대표님과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그만둔다고 할 때 좋은 제안을 많이 주셔서 진짜 감사했다.

 

유튜브를 위해 회사를 그만둔 것이라 생각해도 되는건가

일단은 창업이 목적이었다. 회사의 마케팅 채널로 활용하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다. 원래 플랫폼 사업을 하고 싶었다. 매장을 관리하다 보면, 점주들이 더 싸고 좋은 원두를 추천해주어도 교체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커피 맛이 바뀌면 손님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커피 선택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그런 경우도 있다. 회사를 나온 이유는 매장과 좋은 원두 업체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사업을 하고 싶어서였다. 플랫폼 사업은 자본도 많이 필요하고 투자도 많이 필요하다. 국내 커피 산업은 2006년부터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으니 15년 정도 흘렀고 그 사이 대부분 회사가 자리를 잡았다. 후발주자로 시작해서 소비자 인식을 선점하고 있는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홍보 채널로써 유튜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사업도 진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터지면서 유튜브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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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BARISTA

 

코로나19로 상황이 어려워지면 사람들이 농담처럼 유튜브나 해볼까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혹시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사람이 유튜브 시장이 포화 상태라고 말하지만, 아직은 기회가 많은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당분간 유튜브를 능가하는 동영상 플랫폼은 나오기가 힘들 것이다. 유튜브도 결국은 경쟁이다. 나 자체의 매력일 수도 있고, 영상 편집을 잘한다거나 기획력이 좋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장점이 모여서 조회수라는 결과물을 만든다. 또 노력이나 능력만큼 평가받을 수 있어 한 번쯤 도전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직업으로 유튜브를 생각한다면 여러 가지 조사나 준비가 필요하고, 2년은 버텨보겠다는 각오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어중간하게 덤볐다가는 어중간한 결과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영상 편집은 꼭 스스로 했으면 좋겠다. 영상은 편집에 따라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가 확연히 바뀌고 매력이 달라진다. 너무 편집자에 의존하면 나중에 편집자가 없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편집도 크게 어렵지 않다.

 

유튜브를 시작할 때 대부분 어떤 채널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대부분은 있는데, 어떤가

내 목표는 내가 유명한 인플루언서가 되기보다는 또 하나의 플랫폼이 되고 싶었다. 한 개인이 만들 수 있는 콘텐츠에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방구석 라떼아트는 이지유 바리스타 본인의 노하우를 소개하는 자신만의 콘텐츠다. 채널에 나와서 열심히 해주는 만큼, 이익을 얻어갈 수 있도록 키트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물론 그 수익은 이지유 바리스타의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전문가들이 내 채널에 와서 자신의 콘텐츠를 소개하고, 그렇게 꾸준하게 양질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업로드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싶다.

 

혹시, 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중국 진출도 노려볼 생각이 있나

물론이다. 중국에 원두를 수출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 그리고 중국 돈을 버는 것, 그것이 내가 정한 목표다. 중국 커피시장은 매우 크다. 한 번 실패했지만,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때 중국에서 흘린 땀과 갈아 넣었던 영혼까지 되찾아오는 설욕전을 꼭 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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