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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카페이야기②…커피하우스의 역사와 카페 문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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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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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dai Kopi Pertama di Seluruh Dunia @kahvve.com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 키바한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475년 커피 문화가 막 꽃피기 시작하던 오스만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문을 연 키바 한(Kiva Han)'이라고 추정된다. 키바한은 요즘 사람들이 즐겨 찾는 카페의 모태가 되는 형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이 커피 향과 맛을 음미하거나 수다를 떠는 등 현재의 카페와 유사한 기능을 제공했기 때문.

 

당시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의 카이로에서부터 중동의 바그다드와 메카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커피 유입이 자연스러웠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커피의 위상이 얼마나 높았던지 남편이 매일 정해진 양의 커피를 제공하지 못하면 아내가 이혼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오스만 제국 사람들이 커피를 사랑하고 또 즐겼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들의 뜨거운 사랑에 힘입어 커피는 중동 인근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다마스쿠스와 카이로 등의 대도시에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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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lue Bottle Coffee House @wikipedia

 

로즈구원의 문같은 카흐베가 생겨났고 1554년에는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카흐베 카네스(Kahve Kanes)’가 문을 열었는데, 화려한 내부 장식과 호화로운 가구들로 꾸며 사교 장소로 인기를 누렸다. 국제적인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했던 각국 사람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커피 문화를 전파하는 메신저가 되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도 커피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초기에는 이슬람 문화를 배척하는 편견 때문에 이교도들이나 마시는 음료라고 비난받았다. 이로 인해 커피 문화가 정착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중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에 세례를 내려 공식화함으로써 유럽 곳곳에 커피하우스 붐이 시작되었고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첫 커피하우스가 생기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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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feFlorian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페 플로리안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45년에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 문을 연 카페 플로리안(Caffé Florian)’이다. 플로리안은 라틴어로 꽃다운이라는 의미로, 다른 카페와 차별화되는 아름다운 실내 장식으로 문을 열 때부터 화제를 모았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페이자, 가장 아름다운 카페로 손꼽힌다.

 

카페 플로리안은 바이런, 괴테, 루소, 가리발디, 쇼팽, 나폴레옹 등의 명사들이 즐겨 찾을 만큼 유명한 곳으로 이들이 남긴 일화로 더 유명세를 누렸다. 특히 플로리안은 여성의 출입을 가능케한 최초의 카페였기 때문에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여성들에게 작업을 걸기 위해서 자주 카페에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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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feFlorian


베네치아 커피하우스에서는 에티오피아 고대 지역 하라에서 재배된 원두와 인도산 아라비카를 블랜딩한 동양적인 향의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또 커피를 낼 때에는 터키를 물리친 기념으로, 이슬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어 손님에게 접대했는데, 이것이 관습으로 남아 오늘날에도 중부 유럽에서는 커피에 케이크, 또는 달콤하게 디저트를 곁들이는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베네치아 커피하우스는 이탈리아의 다른 주요 도시들과 유럽 각국에 커피하우스가 퍼져나가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베네치아가 커피 문화의 꽃망울을 터뜨릴 무렵 이탈리아 북동부 파도바에서는 페드로치(Pedrocchi)’가 문을 열었는데, 플로리안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실내 장식으로 명성을 얻었다. 또한 로마에서는 그리스인이 운영하는 카페라는 뜻의 상호를 가진 그레코(Greco)’가문을 열었다. 그레코에는 멘델스존, 로세티, 리스트, 토스카니니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이탈리아의 다른 주요 도시들에도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많은 카페가 들어섰다. 19세기가 끝날 무렵 커피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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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LeProcope

 

프랑스 최초의 카페, 카페 르 프로코프

 

루이 14세는 하루에도 몇 잔씩 고급 원두로 내린 모카커피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커피 사랑은 루이 15세에게로 전했다. 또 궁정 온실에 커피나무를 심어 매년 커피콩을 수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왕족들 사이에서 커피 붐이 일어나자 귀부인들 사이에서 커피 모임이 생겨나며 본격적인 커피하우스가 등장하였고, 커피는 사교 문화의 핵심이 되었다.

 

1670년대 파리에서는 터키식 복장을 한 행상들이 돌아다니며 커피를 팔았다. 이탈리아인 프로코피오 데이 콜텔리는 자신의 이름으로 1686년에 파리 생 제르맹 시장 근처에 프랑스 최초의 커피하우스 카페 르 프로코프(Cafe Le Procope)’를 열었다. 카페 르 프로코프에는 디드로, 달랑베르, 루소, 볼테르, 랭보, 빅토르 위고, 뷔퐁 등 계몽주의 시대의 쟁쟁한 문인과 사상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사상가들은 이곳에서 생각을 날카롭게 갈고 닦았다. 이들 중 볼테르는 하루 40잔 이상을 마셨으며, 르 프로코프에는 볼테르가 즐겨 앉았던 탁자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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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LeProcope

 

나폴레옹은 10잔의 커피를 마신 후 돈 대신 자신의 모자를 맡겼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파리의 커피하우스는 항상 진지한 고민과 고담준론을 논하는 지성인들만의 아지트는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계몽주의자들에게는 토론의 장이었지만 일반 파리 시민들에게는 중요한 뉴스 공급처였다. 손님 사이사이에는 정부의 스파이도 많았다. 바스티유감옥에 보관된 문서에는 당시 카페에서 수집한 정보나 사소한 대화까지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1850년에는 파리에 약 2천여 개의 커피하우스가 생겨났다. 에펠탑, 개선문, 샹들리제 외에 파리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아이콘은 노천카페이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곳이자, 그의 소설 속 단골 배경이었다. 지금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파리의 샹들리제의 노천카페는 낭만과 여유를 느끼게 만드는 인상적인 거리 풍경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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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카 로제 하우스가 있던 자리에 새로 들어선 자메이카 와인 하우스.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 파스카 로제 하우스

 

영국은 홍차의 나라로 유명하지만, 네덜란드와 더불어 일찍이 커피 무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커피하우스 파스카 로제 하우스는 영국 최초로 1652년 런던에서 문을 열었다. 파스카 로제의 주인은, 터키 상인의 마부였던, 보만으로 알려졌다. 로제는 아침마다 주인을 위해 커피를 끓였는데, 이웃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커피하우스를 열게 되었다. 이후 커피하우스는 급속도로 퍼져 1683년에는 런던에만 약 3천개의 매장이 운영되었다고 한다.

 

영국 최고의 대학인 옥스퍼드에서도 커피에 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크레타 출신의 한 학생이 고향에서 보내 준 커피 콩을 기숙사에서 몰래 끓여 마시다가 발각되어 퇴학당하는 일이생겼기 때문이다. 이방의 자극제는 당시 수도원 분위기의 교내에서는 금기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옥스퍼드 내에 커피하우스가 태동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소원이 이루어지듯, 1655년 옥스퍼드에는 커피하우스 티리야드가 문을 열었다. 단골은 학생과 교수, 교양있는 신사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당시 명성이 높은 건축가이며 옥스퍼드 교수이기도 한 크리스토퍼 렌을 중심으로 그룹이 형성되었다. 여기에 청교도 혁명이 몰아친 폭풍을 피해 런던으로부터 피신해 온 과학자들이 가세했다. 이처럼 왕립 한림원이 커피하우스를 산실로 태어났다는 것은 카페나 살롱의 문화, 더 나아가서는 유럽의 차 문화 및 유럽풍의 지성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시사를 준다.

 

커피하우스는 초창기에 지식인들이 모여 담론하는 사교장이었다. 사람들은 그 단골들을 커피하우스 인텔리라고 부르면서 우러러보기도 하고 또 경원하기도 하였다. 1718세기 회화작품과 19세기에 사진에 담긴 커피하우스의 실내 풍경을 보면, 한 사람이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그를 둘러싼 다른 손님들이 귀 기울이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지식인들의 담론의 사교장은 어느덧 지식에 눈을 뜬 민중들의 열린 정보센터로 발전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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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 캡처 ‘카페 카카듀’

 

예술가들의 커피하우스, 카카듀

 

우리나라 최초이자 가장 대중적인 카페는 1909년 서울 남대문에 문을 연 남대문역 끽다점을 효시로 삼을 수 있다. 차를 마신다는 의미를 담은 끽다는 차 문화가 발달한 한자 문화권에서 사용하던 단어로, 일본에서는 근대화 초기부터 찻집이라는 뜻으로 끽다점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했다.

 

1915년 조선 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 <조선 철도 여행안내> 책자에는 남대문역 끽다점 내부라는 글과 함께 사진이 게재되어 있어 당시 모습을 알 수 있다. 최초이기는 하나, 남대문역 끽다점 역시 일본인 소유이자, 조선 총독부 직영의 가게였다.

 

그렇다면 조선인이 오픈한 최초의 카페는 어디일까. 1927년 국내 최초의 영화감독 이경손이 종로구 관훈동에 개업한 카페 카카듀라고 알려졌다. 이경손이 직접 차를 끓여 내던 곳으로, 한글 간판과 이국적 분위기의 실내 장식 등 당시에는 볼 수 없는 과감한 분위기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경영이 미숙하고 손님도 많지 않아서 아쉽게도 수개월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최초의 카페 카카듀의 모습은 영화, 연극 등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2016년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밀정>에서 극 속 이정출의 비서 역할로 나왔던 김사희가 커피숍에서 정보원에게 정보를 받는 장면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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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석 ‘낙랑팔러’

 

이듬해 1928년에는 영화배우 복혜숙이 종로2가에 비너스라는 카페를 열었으며, 뒤이어 극작가 유치진이 브라다나스, 조각가 이순석이 낙랑팔러, 시인 겸 소설가인 이상이 제비라는 이름으로 경성 시내에 다방을 열었다. 당시 명동, 종로, 소공동, 충무로 일대에는 문화 ·예술인들이 경영하는 카페가 수십 곳이나 존재했다. 당시 카페는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작가 협회나 사무실 역할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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